○ 탐방일 : 2014년 9월 7일
○ 소재지 : 경기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803
↓ 국청사 대웅전
국청사: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서문 안에 있던 절. 1624년(조선 인조 2) 성을 쌓은 스님 각성(覺性)
이 두 절을 짓고 한흥사ㆍ국청사라 함.
* 겹처마 지붕의 천장에서 화약 제조
국청사지는 서문에서 남동쪽으로 228m지점의 해발 44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절이 있는
곳은 사지에서 북쪽으로 140m 지점인데 이절은 한국전쟁 이후 새로 지은 절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절이 부국에 있어 부증이 많았다고 한다.
국청사와 한흥사의 사명에 대하여 남한지에서는 두 절의 이름의 의미를 몰랐는데 병자호란을 치른
후에야 청태종을 뜻하는 한(汗)이 한(漢)과 음이 같아서 한흥사라는 이름과 통하고, 또 국청사 역시
금나라가 국호를 청으로 바꾼 것이므로 절 이름을 미리 국청사라 한 것이구나 하고 신기하게 여겼
다고 한다.
당초의 국청사는 누각 앞에 못이 있었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 겹처마 지붕의 천장을 만들고,
그 천장안에서 화약을 제조하였다고 한다. 원래의 사찰은 을사보호조약 이후까지 의병의 군기고
쓰이다가 일제의 무기 및 화약수거 때인 1907년 8월 1일 폭파 되었다. 현재 국청사지 내에는 비교적
넓은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고, 축대와 초석이 곳곳에 노출되어 있어 넓은 사역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국청사에 묻어 있는 역사적인 이야기들
그러나 성내에는 대략 20년 정도 자란 나무가 3m 간격으로 일렬을 이루며 식재되어 있는데 이 나무는
영락신학원에서 조림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사유지라고 하지만 선조들의 호국정신이 깃든 사지
안에 조림을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루속히 사지 안의 모든 나무들을 베어내고 사지
영역에는 울타리를 치고 안내판을 설치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국청사는 2단 자연석 기단 위에 장대석을 올리고 그 위로 조상한 팔작 지붕에 겹처마와 원주를
한 정면 3간, 측면 3간의 건물이다. 특히 팔작지붕은 대웅전 안 천정을 만들고 그 천정 안에서는 화약
을 제조하고 법당에서는 예불을 했다고 한다.
또한 국청사 법당 안의 주불은 현재 우리나라에 3기뿐이라고 한다. 신라 헌안왕 3년 범일국사가
강원도 철원 보개산 심정사에 조성, 봉안했던 천불 중의 일불이라고 하니, 사찰만 재건했을 뿐
유물은 오래된 것이라고 볼 있다. 또한 이곳에는 성 3간의 친필이라고 전해지는 병풍 1점과
송시열의 친필 책자 3권이 있었으나 그후 없어졌다고 한다.
국청사 앞의 우물은 효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고 옥수가 흐르고
있는 국청사의 우물이다. 지금은 완벽하게 보존하기 위해 금고식으로 만들었고 넘치는 물을 다시
받아 절 입구에 약수터로 만들었지만, 그러나 이 우물의 사연은 뭉클한 우리 민족의 근본적인
착하고 선한 정감을 느낄 수가 있다.
국청사 앞 우물에 얽힌 이야기
조선시대 광주 이씨 조상에 이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현재의 광주시 구천면 둔촌에서
그의 부친이 악성 독종을 앓고 있었다. 이에 그의 아들 이집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남한
산성에서 백일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꿈에 산신이 현몽을 하여 이곳에 이르러 우벽
간에 쌓인 나뭇잎을 긁으니 의외의 맑은 샘물이 나와 그 물을 떠다가 부친께 마시게 하니 독종
이 나았다고 한다.
그후 이 샘물은 전국에 알려져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성시를 이루었고 실제로 효험도
있어 간혹 지금도 피부병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등산&여행 사진 > 남한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한산성(제6암문,영춘정) / 2014,9,7 (0) | 2014.09.17 |
---|---|
남한산성(북문) / 2014,9,7 (0) | 2014.09.17 |
남한산성(침괘정)/2014,9,7 (0) | 2014.09.16 |
남한산성 (천흥사 동종) / 2014,9,7 (0) | 2014.09.11 |
남한산성 (숭렬전) / 2014,9,7 (0) | 201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