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 정자가 있는 이 지역은 한성의 북방 인후(咽喉 : 목구멍)가
되기 때문에 조선 영조 때 총융청(摠戎廳)을 이곳에 옮겨 서울의 방비를 엄히 하는 한편,
북한산성의 수비까지 담당하게 하던 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검정 [洗劍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총융청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군사들이 쉬는 자리로 정자를 지은 것이 바로 세검정인데,
당시 총융청감관으로 있던 김상채(金尙彩)가 지은 《창암집 蒼巖集》에는,
육각정자로서 1747년(영조 23)에 지어졌다고 적혀 있다.
이곳은 도성의 창의문(彰義門) 밖 삼각산과 백운산의 두 산 사이에 위치하며,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탕춘대(蕩春臺)라는 언덕이 있었고,
부근에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장의사(藏義寺)라는 절이있었다
원래의 정자는 1941년 화재로 타 버렸으나,
1977년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丁자형의 3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세검정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궁궐지 宮闕志》에 의하면, 인조반정 때 이귀(李貴)·김류(金瑬) 등의 반정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검정 [洗劍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동국여지비고 東國輿地備攷》에는 “세검정은 열조(列朝)의 실록이 완성된 뒤에는
반드시 이곳에서 세초(洗草 : 史草를 물에 씻어 흐려 버림)하였고,
장마가 지면 해마다 도성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구경을 하였다.”고 적혀 있다.
또한, 《한경지략 漢京識略》에는 “정자 앞의 판석은 흐르는 물이 갈고 닦아서
인공으로 곱게 다듬은 것같이 되었으므로, 여염집 아이들이 붓글씨를
연습하여 돌 위는 항상 먹물이 묻어 있고, 넘쳐흐르는 사천(沙川)을 거슬러 올
라가면 동령폭포가 있다.”고 하였다.
그 밖에 세검정과 관련된 시로 정약용(丁若鏞)의 〈유세검정 遊洗劍亭〉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검정 [洗劍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조 임금은 세검정을 두고 이렇게 읊었다. “전쟁을 경계한 뜻 되새기며
이 정자에 임하니(詰戎餘意此臨亭) / 한성 북쪽 하늘 높고 뿔피리 소리
청랑해라(漢北天高畫角淸) / 사랑스런 저 샘물 깊고도 힘차서(可愛源泉深有力) /
시원스런 물줄기 온 산을 울리누나(冷然一道萬山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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