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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

김 만성 2016. 9. 12. 20:00


세검정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4호. 정자가 있는 이 지역은 한성의 북방 인후( : 목구멍)가

되기 때문에 조선 영조 때 총융청()을 이곳에 옮겨 서울의 방비를 엄히 하는 한편,

북한산성의 수비까지 담당하게 하던 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검정 [洗劍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총융청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군사들이 쉬는 자리로 정자를 지은 것이 바로 세검정인데,

당시 총융청감관으로 있던 김상채()가 지은 《창암집 》에는,

육각정자로서 1747년(영조 23)에 지어졌다고 적혀 있다.



이곳은 도성의 창의문() 밖 삼각산과 백운산의 두 산 사이에 위치하며,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탕춘대()라는 언덕이 있었고,

부근에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장의사()라는 절이있었다


원래의 정자는 1941년 화재로 타 버렸으나,

1977년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자형의 3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세검정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궁궐지 》에 의하면, 인조반정 때 이귀()·김류() 등의 반정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검정 [洗劍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동국여지비고 輿》에는 “세검정은 열조()의 실록이 완성된 뒤에는

반드시 이곳에서 세초( : 를 물에 씻어 흐려 버림)하였고,

장마가 지면 해마다 도성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구경을 하였다.”고 적혀 있다.


또한, 《한경지략 》에는 “정자 앞의 판석은 흐르는 물이 갈고 닦아서

인공으로 곱게 다듬은 것같이 되었으므로, 여염집 아이들이 붓글씨를

연습하여 돌 위는 항상 먹물이 묻어 있고, 넘쳐흐르는 사천()을 거슬러 올

라가면 동령폭포가 있다.”고 하였다.

그 밖에 세검정과 관련된 시로 정약용()의 〈유세검정 〉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검정 [洗劍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조 임금은 세검정을 두고 이렇게 읊었다. “전쟁을 경계한 뜻 되새기며

이 정자에 임하니() / 한성 북쪽 하늘 높고 뿔피리 소리

청랑해라() / 사랑스런 저 샘물 깊고도 힘차서() /

시원스런 물줄기 온 산을 울리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