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 공인중개사 사무소 자세히보기

사진모음/유적,사적,절

화계사

김 만성 2016. 6. 9. 14:31

탐방일 : 2016년 6월 5

○ 소재지 : 서울시 강북구 화계사길 117


↓ 대웅전


화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 소속의 전통사찰이다.



조선 인조 때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던 김상현은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고국을 삼각산과 한강수로 표현하며 눈물을 흘렸다.

다름 아니라 삼각산과 한강수는 서울의 상징이자, 궁궐이 그 사이에 있으니 나라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서울 하면 한강이요, 삼각산 하면 서울을 떠올린다.
이 삼각산 한 자락에 세계일화(世界一花)를 꿈꾸는 화계사(華溪寺)가 자리 잡고 있다.
일주문 바로 앞까지 주택들이 들어선 도시의 절이지만 산수가 수려하고 숲이 울창해 산사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화계사는 1522년(중종 17)에 신월 선사(信月禪師)가 창건한 절이다.

원래는 고려 때 법인 대사(法印大師) 탄문(坦文)이 화계사 인근에 보덕암(普德庵)을 세우고 오랫동안 법등을 이어왔는데,

신월 선사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짓고 절 이름을 화계사라고 하였다. 그래서 절 측에서는 보덕암을 화계사의 전신으로 여긴다.

화계사가 창건된 조선시대는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장려하는 정책을 펴던 시기였다.

그런 까닭에 조선시대 500년을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에서는 가장 어두웠던 시대로 꼽는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정책적으로는

불교를 탄압하였으나 실제로는 왕실에서까지 불교를 믿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서울 근교에는 화계사를 비롯해 도선사와 흥천사, 망월사 등 왕실 사람들이 드나들던 절이 꽤 많이 남아 있다.


화계사는 창건 때부터 왕실 가족이 참여하였다. 신월이 서평군(西平君) 이공(李公)의 도움을 받아 법당 3처(處)와

요사 50칸을 짓고 절 이름을 화계사(華溪寺)라 한 것이다. 그러나 채 100년도 지나지 않은 1618년에 화재로 전소되어 이듬해 3월

도월(道月)이 재건하였는데, 이때는 덕흥대원군 (德興大院君)가문에서 시주하였다.

덕흥대원군은 중종의 일곱째 아들로 선조의 생부이다. 그리고 1866년에 용선(龍船)과 범운(梵雲) 양 선사가 불전과 승방 건물들을

중수할 때 시주한 사람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다.

왕실의 비호 아래 절의 특색을 살리면서 착실히 발전해온 화계사는,

특히 흥선대원군의 원찰이라 불릴 정도로 흥선대원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원군이 화계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부인 여흥 민씨가 이 절에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원군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오르게 된 일화가 이 절에 전해진다.


어느 여름날, 대원군이 남루한 차림으로 화계사를 찾았다. 너무 목이 말랐는데, 때마침 느티나무 아래에서 동자승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 사발을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신기해서 연유를 물으니 만인萬印이라는 스님이 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원군은 만인을 만나게 되었으며, 만인은 대원군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는 자손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충청도 덕산德山의 가야사伽倻寺 금탑 자리가 제왕지지帝王之地이니,

남연군 묘소를 그곳으로 이장하면 제왕이 될 귀한 왕손을 얻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후에 대원군이 가야사를 찾아가 돈을 써서 금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남연군의 묘를 썼다. 본래 남연군의 묘는 경기도

연천에 있었으니, 500리나 되는 곳으로 옮긴 것이다. 묘를 이장한 지 7년 후인 1852년에 둘째 아들 재황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조선의 제26대 왕인 고종이다. 12살에 왕위에 올랐으므로 대원군이 오랫동안 섭정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대원군은 절 중창을 위해 시주를 하였으며, 전각 곳곳에 자신의 글씨를 써놓기도 하였다.

1933년에는 한글학회 주관으로 이희승, 최현배 등 국문학자 9인이 화계사에 기거하면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집필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근대에 들어와 화계사는 해외에 널리 알려졌다.

1960년 중반부터 숭산 행원 큰스님께서 화계사의 조실로 계시면서 40여년의 세월 동안 전 세계를 돌며 32개국 120여 개의 홍법원을 개설,

5만 여명이 넘는 외국인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화계사는 1991년 대적광전을 창건하고 4층에 국제선원을 개원하여

외국인 불교도들을 수용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승려가 된 외국인은 현정사 주지 스님을 지낸 현각스님 외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

주지 무심스님 등 백여 명에 이른다.


화계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의 말사이며,

송원당 설정 큰스님을 회주 스님으로 모시고 모든 사부 대중이 열심히 정진하고 있다.

* 화계사 홈페이지 에서 발췌. *


↓ 서울둘레길 탐방길에 만난  화계사,









↓ 더위도 식힐겸 쉬어서 가야겠다고 들어갔더니 마침 점심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점심 공양을  하고있었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함에 천원짜리 지폐 3장을 넣고 오랫만에 절밥을 먹어보기로 하고 공양간에 들러

   밥과 국을 받아 자리에 않아 밥을 먹는다... 오랫만에 먹어보는 개운하고 신선한 음식이다.

   공양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절을 둘러보고 둘레길 탐방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