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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여행 사진/남한산성

남한산성, 서문(우익문)

김 만성 2014. 5. 19. 19:40

 

탐방일 : 2014년 5월 18일

○ 소재지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외 하남시,성남시에 걸쳐있음.

 

↓ 서문 (우익문)

 

남한산성 도립공원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경기도남한산성도립공원은 동경

127도 11분, 북위 37도 28분 지점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으로는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으며

성 내부는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속해 있다. 남한산성이 위치한 광주시는 약 80%가 산이며 나머지

20%가 평야부에 속하는 경작지이다. 높고 낮은 산이 많으며 좁고 긴 하천이 한강을 향하여 북 또는

북동쪽으로 흐른다.

 

한강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였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으로 여겼다.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이 자리잡고

 

있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조선왕조 시대의 경기도남한산성도립공원은 선조 임금에서 순조 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
였다. 그 중에서 특히 조선 그 중에서 특히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

 

인조 2년(1624)부터 오늘의 남한산성 축성 공사가 시작되어 인조4년(1626년)에 완공한데 이어,

 

산성 내에는 행궁을 비롯한 인화관, 연무관 등이 차례로 들어서 수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1894년에 산성 승번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 초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그 이후 주인을 잃은 민족의 문화유산들은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다가 하나 둘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남한산성 주변에는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에서 터만 남아있거나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최근 들어 남한산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서문은

산성의 북동쪽 모서리 부분의 해발 450m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은 서쪽사면의 경사가 급해 물자를

이송하기는 어렵지만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서문은

산성의 초축시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정조 3년(1799) 개축하여 우익문(右翼門)이라 칭하였다.

행궁터를 중심으로 국왕은 남쪽을 바라보며 정치를 하는 것인데, 서문은 우측이 되므로 우익문이라 하였다.

서문은 인조 15년(1637)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이 문으로 청나라 진영에 들어가 화의를 맺고 항복하였던

바로 그 문이다.


서문은 개구부와 문루로 구성되어 있다. 개구부는 내외면이 반원형의 홍예식이다. 외면은 높이 210cm이고

폭은 146cm이다. 바닥에는 지대석을 깔고 양쪽에 50×40×130cm의 장방형 홍예기석 한 매를 놓고 그 위에 5 매

의 홍예석을 올려놓았다. 외면 홍예 안쪽에는 2짝의 목재 판문을 설치하였다. 문짝의 크기는 85×210cm이며,

표면에는 20×33cm 크기의 방형 철엽을 4cm 정도 겹치도록 부착하였다. 대문을 지탱하는 문지두리는 석재로

위, 아래에서 지탱하도록 되어 있고, 양 측벽에는 장군목을 끼워 빗장을 지를 수 있게 40×20×35cm의 장방형

홈을 파놓았다. 대문 안쪽의 천장부는 회반죽으로 마감되어 있으나 부분적으로 표면이 박락되어 전돌이

일부 노출되어 있다. 안쪽의 홍예는 높이 227cm, 폭 210cm이고, 측벽부는 114×103cm 정도의 장대석으로

두 단을 쌓았으며 높이 170cm 이상부터는 전으로 쌓았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이다.

문루의 처마는 겹처마를 두르고 누대의 용마루는 치미를 올려 장식하였다. 문루의 천정 양식은 연등 천정에

 일부 우물 천정 을 병용하였다. 기둥 양식은 주심포에 2출목익공식포를 장식하였다.

 

 

 

 

 

 

 

 

 

 

 

 

 

 

 

 

 

 

 

 

 

서문(우익문) 주변 성 외곽에는 붓꽃들이 피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으며,

휴일이라  등산객 및 나들이 인파로 산성은 붐비고 있었다.

서문을 둘러보고 나무그늘을 찾아 자리를 펴고, 가져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니, 솔향기와 어디선가 아카시아 꽃향기가 풍겨온다.

아~~~ 여기가 지상낙원 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