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 : 2014년 5월 12일
○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외
↓ 장릉
단종
1441(세종 23)~ 1457(세조 3).
조선 제6대 왕(1452~55 재위).
아버지는 제5대 왕 문종이고, 어머니는 현덕왕후(顯德王后) 권씨(權氏)이다.
비는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이다. 1448년(세종 30) 8세 때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452년 5월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죽자,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그전에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여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에게 나이 어린
세자의 보필을 부탁했고, 집현전 학사인 성삼문·박팽년·신숙주 등에게도 좌우에서 힘을 모아 도와주라는
유언을 했다. 그러나 1453년 숙부 수양대군이 권람(權擥)·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황보인·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군국(軍國)의 모든 권리를 장악하자 단종은 단지 이름뿐인 왕이 되었다.
1455년 단종은 한명회·권람 등의 강요에 더이상 견디지 못하여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다. 1456년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응부·유성원 등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모두 처형된 뒤,
1457년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
그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숙부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노산군에서 서인(庶人)으로 강봉되었으며 10월에는 마침내 죽음을 당했다.
짧은 재위기간중에도 1453년 양성지(梁誠之)에게 〈조선도도 朝鮮都圖〉·〈팔도각도 八道各圖〉를 편찬하게
하고, 이듬해에는 〈황극치평도 皇極治平圖〉를 간행하게 했다. 1454년 〈고려사〉를 인쇄·반포했으며,
그해 12월 각 도에 둔전(屯田)을 설치하도록 명령했다. 1681년(숙종 7)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 복위되어 시호를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
묘호를 단종으로 추증하고, 능호를 장릉(莊陵)이라 했다.
↓ 장릉입구 매표소.
↓ 청령포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
청령포,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특수지형이며, 현재도 도선을 이용해야만 방문이 가능하다.
또한 이곳은 1457년(세조 3) 세조(世祖)에 의하여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그 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기기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址)’라고 써서 내렸고, 이것을 화강석 비좌 위에 올려진 오석(烏石)으로 된 비신에 새겼다.
비(碑)의 뒷면에 1763년 9월에 원주감영으로 하여금 쓰게 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지명 청령포라고 썼다. 이로 보아 청령포라는 지명은 유래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과거 서강이 우회하던 방절리 주변의 저지대에 현재는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구하도와 미앤더 핵이라 불리는 지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인근에 석회암 지대에 발달하는 카르스트지형과 구하도 상에 위치한 방절리의 하안단구(河岸段丘) 등이
발달되어 있다.
그 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기기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단종문화제 때 세운 단종어가가 있으며, 단종이 서낭당을 만들 듯이 쌓은 것이라 하는 돌탑 등이 있다.
명소로서 피서객과 낚시꾼이 많이 찾아온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에서 인용)
↓ 한반도 지형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180)
자세한 내용은 참고 문헌을 확인해주시기 바라며,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인증샷한컷,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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