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 공인중개사 사무소 자세히보기

사진모음/유적,사적,절

충주미륵대원지

김 만성 2014. 5. 31. 20:11

 

탐방일 : 2014년 2월 16일

○ 소재지 :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58

 

우연히 컴퓨터를 뒤지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사진 몇장을 찾아냈다.

충주 미륵 대원지  그리고 구인사 사진들, 사진을 못올린걸보니 하는일도 없으면서 꾀나 바빴었나부다,

여기에는 충주미륵대원지 사진만 올리고, 다음페이지에 구인사 사진을 올리기로한다.

 

↓ 충주미륵대원지

 

[간략정보] 
  • 한자
  • 분야
  • 유형
  • 시대
  • 성격
  • 건립시기/연도
  • 크기(높이, 길이, 둘레, 깊이)
  • 규모(면적)
  • 소재지
  • 소유자
  • 관리자
  • 문화재 지정번호
  • 문화재 지정일
  • 집필자

 

 

접경지역의 중심지 답게 이곳에도 독특한 공기돌에 관련된 전설 한가지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 공기돌은 과거 온달장군이 가지고 놀면서 힘자랑을 했다고 전해지는 공기돌이다.

자연석에 약간에 인공을 가미했는데.과거 온달장군이 격전을 치루었던 온달산성이 근처에 있는것으로

보아 약간의 신빙성은 있는거 같다.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위치한 고려 초기의 석굴사원 터.

 

사적 제317호. 하늘재[寒喧嶺]·계립재[鷄立嶺]·새재[鳥嶺]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짜기 북쪽 기슭에

 

북향하여 조성된 석굴을 주불전으로 하는 절터이다. 창건 연대나 내력, 사원의 정확한 명칭을 알 수 없으나,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석굴은 거대한 돌을 쌓은 위로 목조로 세운 자취가 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발굴 당시 ‘미륵당초’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의 사원으로

 

추정된다. 현재,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96호),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보물 제95호), 석등,

 

당간지주 등 중요한 석조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며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누이인 덕주공주가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는

 

마애불을 만들자 태자는 북향의 석굴을 지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1977년 1차 발굴조사 당시, ‘明昌三年金堂改蓋瓦(명창삼년김당개개와)’, ‘彌勒堂(미륵당)’,

 

‘彌勒堂寺(미륵당사)’, ‘院主(원주)’ 등의 명문와(銘文瓦)가 출토되어 미륵을 모시는 사찰이자 원(院)을

 

겸하는 사찰이며, 1192년(고려 명종 22) 금당의 기와를 새로 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석굴과 전실의

 

목구조가 소실된 것은 13세기이며, 이후 곧 복원되었고 조선 초기에 크게 수리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었고 18세기에 들어 수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 폐사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1936년 발생한 큰 수해로 법등(法燈)이 끊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2011년 7월 28일자로

 

‘중원 미륵리사지’에서 ‘충주 미륵대원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해발 378m의 고지대에 위치한 미륵대원지에는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의 인공으로 쌓은 석굴

 

형식의 불전이 있다. 석굴 중앙에는 대좌를 두어 석불입상을 봉안하고, 측면과 후면 석벽의 중앙은

 

감실(龕室)처럼 만들어 작은 불상들이 부조되었다. 석굴 상부는 목조 건물로 지어 천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에는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삼층석탑, 석등, 귀부(龜趺),

 

당간지주, 불상대좌 등의 석조 문화재가 있다. 양식적으로 보면 고려 초인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형이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져 사원은 북향을 하고 있으며, 사원 전체가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1977·1978·1982년 3차례에 걸쳐 시행된 발굴조사 당시 출토된 여러 명문 기와와 건물지 발굴을 통해

 

사찰의 성격이 밝혀졌다. 특히 ‘미륵대원’이라고 한 것은 동쪽에 역원(驛院)이 있었기 때문인데, 말을

 

묶어 둔 마방시설, 여행자 숙소 등 역원의 건물터도 함께 발굴되어 사찰과 역원의 기능을 합친 고려

 

초기의 중요 유적지로 평가되고 있다. 미륵대원지는 『삼국유사』권1, 왕력(王曆)의 아달라니질금

 

(阿達羅尼叱今)조에 “계립령금미륵대원동령시야(鷄立嶺今彌勒大院東嶺是也)”의 미륵대원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의 존폐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시기인 고려 충렬왕대까지는

 

존속되고 있었던 듯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절터이자, 석조와 목구조를 결합한 석굴을

 

금당으로 삼은 유일한 유적이다.

 

토함산 석굴암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유일한 석조·목조 구조의 반축조(半築造) 석굴사원으로 평가된다

 

(인터넷 홈페이지,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발췌)

 

 

 

 

 

 

 

 

 

 

 

 

근처에 수안보온천 및 문경새재와 월악산,하늘재가 있으니 마음먹고 다녀올 여행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계절 가볼만한곳, 그리고 아래로는 유명한 송계계곡이 있으니 피서철에도 좋을듯 합니다.

-萬成-

'사진모음 > 유적,사적,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천사 (북한산)/2014,9,9  (0) 2014.09.12
구인사  (0) 2014.06.17
수덕사  (0) 2014.05.30
장릉,청령포,한반도지형  (0) 2014.05.17
김삿갓문학관, 김삿갓유적지.  (0) 2014.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