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에 따른 시장 효과가 종적을 감췄다. 대책
발표 후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수천만 원씩 오르고 급매물이 일부 거래됐으나 지난주부
터 그 이전 가격으로 떨어지고 거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률 상향과 소형평형 의무비율 완화 등을 중심으로 한 재건축 규제
완화가 장기적으로 보면 주택 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지만 전 세계 금융 위기
와 실물경제 침체 앞에서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재건축 아파트, 많게는 1억원 이상 떨어져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는 최근 들어 서울 강남권 주요 재건축 단지에 급매물이 다
시 늘어나면서 아파트 가격이 대책 발표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고 20일 밝혔다. 실제
서울 송파구 잠실동 A아파트(112㎡)는 발표 후 9억5000만원까지 호가가 상승했지만 현재
는 8억1000만원짜리 급매물도 나와 있다. 이는 대책 발표 직전인 10월 말 8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것보다 4000만원 낮아진 수준.
이번 재건축 규제 완화의 최대 수혜 단지로 꼽혔던 강남구 대치동 B아파트(112㎡) 역시
대책이 나온 뒤 10억3000만원을 호가했으나 지금은 9억2000만원에도 매수자가 없다. 강남
구 개포동 C아파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43㎡는 발표 후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
감으로 6억6000만~6억7000만원까지 올랐지만, 최근에는 6억1000만원으로 10월 말 시세
와 비슷해졌다. 11·3대책 이전 3억2000만원이었던 강동구 고덕동 D아파트(43㎡)도 재건
축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3억4000만~3억5000만원까지 올랐다가 최근 3억2000만
원으로 내렸다.
◆"이전 가격보다 더 낮춰도 매수자 없어"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규제 완화 발표 이후에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자 매수 심리는 더
욱 위축되고 거래도 뚝 끊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거의 다 풀어줬
는데도 가격 하락세가 계속 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재건축 시장에 급매물이 더 쌓이고
가격의 추가 하락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송파구의 J부동산중개업소는 "재건축 대책 발표 후 호가를 올리거나 매물을 거둬들였던
집주인들이 다시 가격을 낮추고 있다"며 "하지만 실물경제 침체, 건설사 부도 등으로 경제
가 어수선하다보니 매수자들도 가격만 알아보고 매입 결정은 선뜻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
라고 말했다. 강동구의 S부동산공인은 "재건축 규제 완화에다 투기지역까지 해제되면서
거래의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효과는 일주일도 채 가지 않았다"며 "가격이 다시
떨어지다보니 발표 직후에 집을 산 계약자들이 계약을 포기할 지를 고민하는 모습"이라
고 전했다.
◆"재건축 가격 하락세 당분간 지속될 듯"
전문가들은 재건축 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풀겠
다는 방침은 밝혔지만 이를 시행하기 위해선 법 개정 등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
이다. 더욱이 금융시장 위기, 경기 침체 등으로 부동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하락·안정세를
계속 유지할 경우 재건축 사업성이 떨어져 추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사
안이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소장은 "경제 위기감이 커지면서 정부의 정책 변수가 사실상 시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내년에도 경기가 쉽게 살아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
는 만큼 재건축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 시장 전반이 계속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
다"고 말했다. '닥터아파트' 이진영 팀장은 "아직 아파트 값이 바닥(최저점)까지 떨어졌다
고 보기 힘들다"며 "아파트 매입을 서두르기보다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홍원상 기자 wsho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