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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조선시대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역사의 현장

김 만성 2015. 8. 11. 19:20

탐방일 : 2015년 8월 5

○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

 

↓ 해미읍성 정문 (진남문)


해미읍성(海美邑城)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옛 읍성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건축된 성 중에서는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성으로, 서산시에서는 해미읍성을 이용한 축제와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매년 6월해미읍성 역사체험 축제(서산해미읍성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교회사(敎會史)에서는 약 3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로 처형당한 천주교 순교 성지(殉敎聖地) 중

한 곳이다.

이곳은 선조 12년(1578) 충무공 이순신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10개월간 근무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1414년(태종 14) 충청병마절도사영이 덕산(德山)에서 이곳으로 이설되었다. 해미읍성은 원래 왜구의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되었는데,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이 성에 주둔한 것도 그때문이다.

 세조때에 군사 제도가 진관체제(鎭管體制) 로 개편되면서도 이 역할은 여전하여 충청도 지역의 주요 군사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효종이 병마절도사를 청주로 이전한 뒤로는 해미읍성은 호서좌영(湖西左營)으로서 호서 지방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다. 해미읍성이란 명칭도 이때 개명된 것으로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內廂城)이었다.


규모

총 길이 - 1,800m

성벽높이 - 5m

총 넓이 - 대략 5만 9천평

성벽 밖에 2m 깊이의 해자를 팠음.


시설

관아문 - 해미읍성의 호서좌영 관아 정문으로서 정면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형식의 건물로 아래층 3칸에

            달아 그 문으로 통행하고 상층은 누각을 만든 전형적인 관아문 형식

객사 - 관찰사 등 귀빈이 오면 숙박하던 곳이다.

동헌 - 지방 관아. 해미읍을 관할하던 관아이다.

책실 - 책과 문서를 보관하며 현감의 자제가 거처하던 곳

청허정 - 읍성 내 정자. 휴게실 용도였다.


특징

한국의 성은 거의 대부분이 산에 쌓은 산성이거나 강을 끼고 건축되었다. 또는 강을 낀 산에 건설된 성도 많다.

북한산성, 남한산성, 삼년산성 등이 산에 쌓은 산성이라면, 진주성, 공주성, 사비성은 강을 낀 산에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 해미읍성은 평지에 타원형으로 지은 것이 특징인데(대략 달걀 모양과 비슷하다), 한반도에서는 이런

형태인 성이 드물다.


연혁

1417년(태종 17년) - 축성 시작.

1421년(세종 3년) - 축성 완료. 이후 230여 년간 종 2품의 병마절도사가 주둔하였다.1651년(효종 2년) - 병마절도

         사가 청주로 이전하면서 해미현 관아가 옮겨와 해미읍성이 되고 문무를 겸한 겸영장이 배치되며 호서좌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4년에 군현제가 폐지되고 해미현이 서산군에 통합되면서 읍성은 폐지되었다. 폐지 이후에는

         성 안에 면사무소, 초등학교 등 기관과 민가가 들어섰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116호로 지정됨

1970년대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내 건물을 철거하고 동헌, 객사, 내아 등을 복원하였다.

2000년대부터 정비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내 동헌, 객사, 내아 등을 복원하고,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2014년 8월 17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문하여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주례하였다.


이상 위키백과 에서 인용


찜통더위가 한창이던 8월5일 자동차로 해미읍성을 향해 달렸다.

찜통더위속에서도 휴가철이라 그런지 서해안 고속도로는 곳곳이 정체가 심했다.

서해안 고속도로 해미 ic를 나와 도착한곳, 해미읍성.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한지도 1년이되었다.

교황의 방문으로 더욱 유명해진 해미읍성. 가야지, 가봐야지 하면서 일년이  되어서야 찾아가게되었다.


↓ 해미읍성 진남문 입구의 표지석


↓ 해미읍성 전경


↓ 프란치스코 교황 서산 방문 1주년 기념 전국 해미성지 순례길 걷기행사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 해미읍성 (진남문) 정문

   읍성의 남쪽으로 통하는 성의 정문.


↓ 해미읍성 좌측 성벽


↓ 해미읍성 진남문의 안쪽전경


↓ 해미읍성 진남문에 설치된 북


↓ 해미읍성 정문 (진남문) 을 들어서면 보이는 해미읍성 풍경


↓ 해미읍성 에 전시된 옛날 무기들

   불랑기 : 서양에서 만들어져 중국으로 전해진 서양제 화기로, 임진왜란때 명나라 원군이 가져와

              전투에 사용하였다. 여러개의 자포를 연속사격할수있는 매우 발전된 신식무기이다.


↓ 대장군포


↓ 별대완구


↓ 화포 : 조선시대 주력화기로 많은 전투에서 사용되었다.


↓ 천자총통


↓ 신기전기화차

   조선시대 문종 1년 (1451) 처음 제작되었으며, 신기전 100발을 장전한후 이를 동시 내지는 연속적으로

   발사할수있는 일종의 다영장 로켓으로 여러전투에서 큰 전과를 거두었다.

   제작당시의 설계도가 남아있는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병기이다.


↓ 검차


↓ 투석기


↓ 운제

   성을 공격할때 사용하던 무기로 높은사다리가 구름에 닿을만큼 높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해미읍성 회화나무 : 충청남도 지정기념물 제172호로 수령 300년 이상 추정되는 나무이다.

   1866년 병인박해때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고 전해진다.


↓ 옥사 : 1935년에 간행된 "해미순교자약사" 를 토대로 복원했으며,

            1790년부터 100여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하였다.





↓ 우물


↓ 민속가옥

   옥사 옆에는 조선시대 민속가옥이 3채가 있고, 부농의집, 상인의집, 말단관리의집을 재현해 놓았다.


↓ 화장실 : 돌로 담을쌓아 주변사람들의 눈을 피하게 되어있으나 하늘은 가려지지 않는다. 


↓ 잿간 : 나무탄재를 모아서 퇴비로 사용하기 위해 저장하던 곳.


↓ 잠야루 (동쪽문)


↓ 해자 :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성밖을 둘러파서 만든것으로 과거에는 읍성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현재 읍성 북쪽에 석축해자를 복원하였다.




↓ 청허정 : 1491년 (성종22년) 충청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 가 지었으며, 맑고 욕심없이 다스리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 해미읍성 장승동상 : 역대 대통령의 얼굴 특징을 상징으로 하여 만들었으며, 그외 많은 장승이 전시되어있다.




↓ 동헌 : 조선시대 지방관서에서 정무를 보던 중심건물, 행정업무와 재판등을 하던곳이다.



↓ 내아 : 동헌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방관과 그이 가족들이 거주하던곳이다.


↓ 객사 : 객관이라고도 하며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로사용하던곳.



↓ 지성루 (서쪽문)


↓ 해미읍성 뜰 풍경



↓ 해미읍성 주차장에 있는 서산 9경 관광안내판


바다가 아름답다는 의미의 "해미"

시간이 멈춰버린듯한 성벽,  해미읍성을 돌아보고 입구 자동판매기에서 시원한 음료수 한병을

사서 마시니 갈증이 확 풀린다.

그렇게 조선시대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수있는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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