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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 성곽길 혜화문~동대문(숭례문)~광희문 탐방 / 2016,9,11

김 만성 2016. 9. 11. 20:53

서울 한양도성 성곽길 혜화문~동대문(숭례문)~광희문 탐방

탐방일 : 2016,9,11



오늘은 서울 한양도성 성곽길 혜화문~동대문(숭례문)~광희문 구간 탐방을 하고

서울 한양도성 스템프 투어 완주기념 배지를 받았다.

가을이라지만 아직도 낮기온은 30도 가까이 되지 않나 싶을정도로

더웠지만, 바람도 가끔 불어주고 날씨가 흐려서인지 땀은 많이 나지 않았다.

오늘 다녀온곳 사진으로 다시한번 감상한다,


혜화문:1397년(태조 5)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쌓을 때 도성의 북동방에 설치한 문().



동소문()이라고도 한다. 도성 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설치되었는데,

이 문은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이라 하였다가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로 고쳤다.


1684년(숙종 10) 문루()를 새로 지은 후 한말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1928년 문루가

퇴락하였으므로 이를 헐어버리고 홍예()만 남겨 두었는데, 일제는 혜화동돈암동사이의 전차길을

내면서 이마저 헐어버려 그 형태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당시 북문(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 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1975년부터 시작되어 1980년에 완공된 서울성곽의 일부로 1992년에 복원하였다. (두산백과인용)


서울한양도성 : 서울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조 성곽.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명칭은 '서울 성곽'이었으나 2011년 7월 사적의

통일된 지정명칭 부여 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총 길이는 약 18.2㎞,

면적은 46만 7922㎡이다.

1396년(태조 5) 축성되었다. 성벽은 백악(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길이는 영조척()으로 5만 9500자이며, 이 길이를 천자문()의

97자() 구획으로 나누고 매자구간() 600자로 하여 백악의 동쪽으로부터 천자()로 시작되었다.

막음은 백악 서쪽의 조자() 구역으로 끝났다.

이때 쌓은 성벽은 석성(높이 15자) 1만 9200자, 평지의 토성( 24자, 18자, 높이 25자)

4만 30자이며, 수구()에는 홍예[]를 쌓고 좌우에는 석성을 축조하였다.

홍예 높이는 16자, 석성 등을 포함한 길이는 1,050자였다.

성곽에는 동쪽 흥인지문(;동대문), 서쪽 돈의문(;서대문), 남쪽 숭례문(;남대문),

북쪽 숙청문(;북대문)의 사대문()과 북동쪽 홍화문(), 남동쪽 광희문(),

북서쪽 창의문(), 남서쪽 소덕문()의 사소문()을 냈다.

이 가운데 흥인지문만은 옹성을 쌓았고 숙청문(숙정문)은 암문()으로 하여 문루를 세우지 않았다.

공사는 이렇게 끝났으나 남대문은 1396년, 동대문 옹성은 1399년 완성되었다.

1422년(세종 4)의 도성 수축공사 때 토성 부분을 석성으로 개축하였고, 성벽의 수리는 1451년(문종 1)에도

시행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참변을 당하였고 1616년(광해군 8) 일부가 수리되었다.

그뒤 1704년(숙종 30), 1743년(영조 19) 부분적 보수를 하였으며, 1869년(고종 6) 동대문의 개축을 끝으로

도성의 수명이 다하였다. 현재는 삼청동 ·성북동 ·장충동 일대에 성벽이 남아 있다.

1968년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 이후 군사지역으로만 사용되다가 2006년 4월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의 1.1㎞ 구간이 일반에 개방된 것을 시작으로

2007년 4월 와룡공원~숙정문~청운대~백악마루~창의문의 4.3㎞ 구간이 개방되었다.

개방 시간은 하절기(4~10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동절기(11~3월)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입장할 수 있고 퇴장 시간은 오후 5시이다. 매년 3~11월까지 하루 2회 창의문과 말바위에서 출발하는

문화유산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탐방 시간은 약  2시간이며, 입장료는 무료이나 군사보호지역이므로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두산백과인용)








성곽길을따라 올라가다가보면 낙산공원 들러가는 암문이 나온다, 낙산공원 들어가는방향,


낙산공원 안쪽에서 성외곽방향으로 나오는 암문이다.


낙산공원 제일 높은곳에서 내려다본 동대문방향, 날씨가 흐려서 선명하지를 않다,


낙산공원 표지판, 낙산공원 정상 외곽에 설치되어있다.


동대문 방향으로 내려오는길의 성곽들.


중간쯤에 이화동으로 들어가는 암문이 있다.



이화동에서 바라본 북한산 방향, 날씨가 흐리다.


한양도성 성곽길, 동대문 방향,





성곽길이 끝나고 동대문 (흥인지문)이 나온다,

흥인지문(동대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6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문.



서울 도성에 딸린 8문 중의 하나로서 서울 도성 정동()쪽에 있으며 원래의 이름은 흥인지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동대문이라고 부른다. 1396년(태조 5)에 건립되고 1453년(단종 1)에 중수되었으며,

1869년(고종 6)에 이르러 이를 전적으로 개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화강암의 무사석()으로

홍예문()을 축조하고 그 위에 중층의 문루를 세웠으며 문 밖으로는 반달 모양의 옹성()을 둘리고 있으나

 이것도 1869년(고종 6)에 다시 개축한 것이다. 문루의 아래층은 주위 4면을 모두 개방하였으나 위층은 기둥

사이를 모두 창문과 같이 네모나게 구획하여 각각 한 짝 열개의 판문()을 달았다. 중층()의 우진각

지붕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는 중앙에 고주()를 일렬로 배치하였으며 위·아래층의 대량()들은 모두 이 고주에서 양분되어

여기에 맞끼워져 연결되는 맞보로 되었다. 위층에는 마루를 깔았고 아래층에는 가운데 칸에만 마루를

깔았는데 이는 그 아래에 위치한 홍예문의 윗 부분을 가리는 구실을 한다. 

위층 천장은 이 문루가 다포집 계통에 속하는 건축이면서도 성문이라는 특수한 건물이기 때문에

지붕 가구재()를 전부 노출한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공포()는 아래층이 내삼출목()

외이출목()이고 위층은 내외삼출목()인데 쇠서[]의 형태는 매우 섬약하고

번잡하게 장식화된 부분이 많으며 조선 후기의 쇠퇴된 수법이 곳곳에 엿보인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인용




동대문을 지나 두산타워, 밀리오레를 지나 퇴계로 입구 광희문에 도착했다.

광희문: 사적제10호. 한양도성의 동남쪽으로 , 시구문 또는 수구문 이라고 불렀다.

광희문을 돌아보고 동대문 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오늘의 마지막 탐방길이다.






동대문 역사공원 가는길에 멋있어서 한컷,



역사박물관내 유적지들.









오늘의 한양도성 성곽길 탐방을 마치고 전철을 타러 가면서 하늘을 찌르는 빌딩들 사진을 찍오본다.

두산타워


밀리오레


현대시티아울렛


이렇게 오늘도 멋진 하루를 마무리 하면서 네번에 걸쳐 서울 한양도성 탐방 및 투어를 마치고

흥인지문(동대문) 관리소에서 도장도 찍고 완주기념 배지  받아왔다. 


다음에는 조금 힘들더라도 두번정도로 나눠서  북한산성 성곽길 탐방에 도전할 생각이다.

이번주가 추석이니, 추석이 지나면 날씨도 시원해질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