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 공인중개사 사무소 자세히보기

사진모음/유적,사적,절

사자산 적멸보궁 법흥사

김 만성 2013. 12. 19. 17:36

탐방일 :  2013년 10월 18일

○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422-1번지,

 

 사자산 적멸보궁 법흥사

 

사자산 법흥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나라의 흥륭과 백성의 편안함을 도모하기위해 643년 신라 선덕여왕 12

년에 사자산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興寧寺)로 창건했다.

중국 선종의 중흥조인 마조도일 선사로부터 선(禪)을 전수받았던 신라의 선승 도윤칠감국사의 제자 징효절중

(澄曉折中)이 886년 이곳에 선문을 여니 이것이 바로 라말여초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사자산문(獅子山門)이다.

 

1163년 고려 의종 때 다시 중창하였으며, 1730년 조선 영조 6년, 1778년 조선 정조2년, 1845년 조선 헌종

11년까지 역사의 부침속에서도 소실과 중창을 반복하며 그 맥을 이어왔다.

그 후 폐사지에 가까웠던 흥녕사가 1902년 대원각스님에 의해 법흥사로 개칭되고 재건되었다.

1912년 또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933년 지금의 터로 적멸보궁을 이전 중수하였다.

1991년 삼보스님이 적멸보궁을 다시 증축하였고 1999년 도완스님때에 이르러 법흥사 전모를 혁신하는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법흥사의 유적으로는 옛 흥녕선원의 위세를 짐작하게 하는 3개의 석탑과 1개의 수호석불좌상,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 적멸보궁, 사리탑(강원도 유형 문화재 73호), 흥녕사 징효대사 보인탑(보물 612호),

징효대사 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 72호), 흥녕선원지(강원도 지정 기념물 6호)가 있고 종이가 없던 시절

인도 영라수 잎에 범어로 기록한 패엽경 등의 소중한 삼보종재가 남아있다.

법흥사 주변에는 금강송림으로 우거져있으며 천연기념물 제242호인 까막딱다구리가 서식한다.

 

 

↓일주문

 

 

 

 

 

↓ 원음루

 

↓ 다향원

 

↓종무소

 

 

 

 

 

 

 

↓ 적멸보궁 가는길

 

 

 

 

 

 

 

↓ 법운당

 

↓ 우물

 

 

 

 ↓ 적멸보궁

우리나라에 적멸보궁이 들어선 것은 자장스님(慈藏:590 ~ 658)에 의해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율사는 선덕여왕 5년( 636)에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님은 중국 오대산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석상 앞에서 간절한 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선덕여왕 12년(서기 643년)에 부처님 사리 100과와 부처님께서 입으시던 가사 1벌을 당나라로부터

가져 와 오대산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기도를 계속했다. 오대산에 월정사와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에

흥녕사(지금의 법흥사), 태백산의 갈래사(지금의 정암사) 등이 창건된 것은 이런 인연에 의해서다.

 

 

3년후 신라 조정에서 내린 대국통이라는 직위를 받아 황룡사 9층 석탑을 세워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는

초석을 다졌고 선덕여왕 15년(646)에는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모시고 금강

계단을 세웠다. 임진왜란 중에 통도사의 사리는 왜구들에 의해 도난당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아 왔다.

이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정암사에 나머지는 통도사의 계단을 중수하고 봉안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5대 적멸보궁은 경상남도 양산군 영축산 통도사,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상원사,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강원도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강원도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淨巖

寺)로 알려져 있다.

법흥사 적멸보궁은 사자산 연화봉 중턱에 있다. 경내 입구인 원음루에서부터 5백미터 정도 올라가면 있다.

넓고 큰 돌들을 엮어 1단대의 지대를 마련하고 목조건물로 조성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적멸보궁 기와의 입막새에는 법(法)자가 씌어져 있고 ‘소화(昭和) 8년 11월 준공 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는데,

이는 1934년에 법흥사의 기와를 굽고 새로 지었다는 뜻이다.

 

적멸보궁 뒤에는 자장스님이 불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토굴과 사리탑이 있다.

적멸보궁 뒤 축대 위에 석조 사리탑이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됐다고 전해지나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토굴의 외부는 뒷편의 낮은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 흙으로 석실을

엎었는데 남향한 입구 쪽 정면만 높고 뒷편은 경사 때문에 약간 봉긋한 모양의 원형으로 마치 무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토굴 안의 평면은 입구부터 약간씩 넓어지다가 중심부에서 서쪽 한쪽만을 확장하고 원형에 가깝도록 했다.

내부의 높이는 키 작은 사람이 겨우 설 수 있을 정도인 160센티미터 너비는 190센티미터에 불과해 앞쪽에

조그마한 숨구멍만 남겨둔 무덤이나 마찬가지다. 자장 이후 다른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

나 이곳에 석관을 안치하여 고승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하고 경첩을 간직하던 곳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토굴 옆에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불사리를 모셔올 때 사리를 넣고 사자 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이 남아있다.

몸체의 개석이 모두 파손되어 있으나 각부의 부서진 조각이 잔존함으로서 완전한 형태를 파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석함은 한 개의 장방형 돌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징효대사가 쓰던 경함이라는 설도 있다.

 

  

 

 

↓ 자장율사 토굴
법흥사 적멸보궁 뒤에 있는데 뒷편의 낮은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 흙으로 석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 위를 덮었다.
석실의 외부구조는 원형으로 마치 분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고분의 연도와 같이 개설된 입구는 몸을

굽혀서 겨우 출입할 정도인데 내부의 밑바닥이 입구보다 50cm 정도 깊어 몸을 일으킬 수 있으며 머리만

숙이면 굴 내에서도 다닐 수 있다. 이 석실의 조성연대는 내부구조로 보아 고려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실 내부의 높이 160cm, 깊이 150cm, 너비가 190cm 이다.

 

↓사리탑
법흥사 적멸보궁 뒤에 위치하고 있는 사리탑은 석조부도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어 있다.

탑신은 상 · 하단이 약간 좁아진 배홀림이 있는 八角柱形(팔각주형)으로 전 ·후 양면에는 門扉(문비)를 모각하고 그 안에 자물통을

양각하였는데, 전 ·후면의 형태는 조금씩 다른점이 있다. 이 같은 전후 양면을 제외한 나머지 6면에는 모두 각종 입상이 양각되어 있는데

전면 문비 좌우 양면에는 仁王像(인왕상)을, 그 밖에 좌우 양면에는 四天王像(사천왕상)이 있다.
이 부도의 조성 시기는 앙·복련과 안상 등의 조성 양식이 고려시대 초기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탑신부의 배흘림이나

각 면에 조각된 입상의 조성양식으로 보아 그 보다 다소 뒤진 11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부도로 추정되고 있다.

규모는 전체 높이 2.4m, 지대석의 한변의 넓이 1.5m다.

 

 

 

 

  

↓ 산신각

 

 

↓ 제2보궁약사전

 

↓ 대웅전

 

↓종각

 

↓ 흥녕대탑

  * 방문일 은 보수중.

 

 

오대산 월정사 적멸보궁  과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 을 돌아보고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을 돌아보고나니

해는 져서 어둠이 깔렸다.

오늘하루 피곤함도 있지만 많은것을 깨닭게한 하루였다.

 

"적멸보궁" 이란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 이란뜻이다.

'사진모음 > 유적,사적,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덕궁  (0) 2014.03.22
운길산 수종사  (0) 2014.03.03
망월사 (도봉산)  (0) 2013.11.12
태백산 적멸보궁, 정암사  (0) 2013.11.06
상원사 (강원도 오대산)  (0) 2013.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