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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서울지하철 스템프투어 1코스 근정전 (고궁) / 2015,8,15

김 만성 2015. 8. 18. 00:08

2015 서울지하철 스템프투어 1코스 투어 (고궁투어, 세계문화유산)

탐방일 : 2015,8,15


↓ 근정전

2015 서울지하철 스템프투어 1코스 투어  (고궁투어, 세계문화유산)

2015년 8월15일 광복 70년 뜻깊은 날이다.

전국이 태극기의 물결로 광복 70년을 축하 하고 있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과, 독립문을 탐방하고 경복궁으로 향했다.


이곳 저곳 할곳없이 관람객과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으며, 대형 건물들은 커다란 태극기를

현수막으로 내걸어 한층 광복70 년의 기쁨을 즐기는 시민들을 반기고 있었다.


↓ 3호선 경복궁역을 나와 국립박물관쪽으로 해서 경복궁으로 향했다,

   역시 경복궁에는 많은 인파가 있었고, 외국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 근정전

경복궁 근정전, 신하들의 조하를 받던 곳, 국보 제223호.

국보 제223호. 1395년(태조 4) 지은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중건된 것이다.

2층의 목조건물로 신하들의 조하를 받던 곳이다.

근정전은 이단으로 된 월대 위에 자리하며, 월대 주위의 돌난간에 새겨진 12지상은 정전 수호의 의미가 있다.


↓ 근정전

월대의 주위를 둘러싼 회랑은 홍례문의 좌우에서 시작해 향오문의 좌우로 연결되면서 근정문과

사정문의 좌우에도 이어져 직사각형의 회랑은 모두 3개의 영역으로 구분된다.

근정전의 좌우 회랑에는 동쪽에 융문루, 서쪽에 융무루, 그 북쪽에 동서행각문인 계인문과 협의문을 두었다.


↓ 근정전

근정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2층 문루인 근정문의 좌우에 일화문과 월화문을 두어 권위성을 보여준다.

앞면 5칸, 옆면 5칸의 팔작지붕으로 아래층의 고주가 위층의 변주가 되는 구조이며,

창방·평방 위에 놓인 다포계의 공포는 외삼출목·내사출목으로 기둥머리마다 직각방향으로 튀어나온

안초공을 두었다. 공포의 전체조형은 판재화하는 조선 후기 다포계 건물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 근정전

천장은 대들보 윗부분부터 우물천장으로 천장 중앙에는 다포계의 천개를 설치하고, 개판에 운룡을 부조했다.

팔작지붕의 지붕마루는 모두 양성을 했고,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를, 추녀마루 위에는 용두와 잡상을 올려놓았고,

사래 끝에는 토수를 달아 위엄을 더했다.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 중에서 가장 높고 규모가 크며, 조선 후기 다포계 건축의 특징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 경회루

국보 제224호.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重層) 팔작지붕건물. 근정전 서북쪽에 있는 방형 연못 안에 세운

이 건물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기 위한 곳이었다.


↓ 경회루

초창 당시 규모가 작은 누각이었으나 1412년(태종 12)에 연못을 확장하고 큰 규모로 중건하였고,

1473년(성종 4)·1474∼1475년·1506년(연산군 12)에 수리공사가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 버려

1867년(고종 4)에 재건하였다.


↓ 경회루


↓ 경회루


↓ 경회루


↓ 경회루


↓ 경회루


↓ 경회루



↓ 광화문

조선왕실과 국가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문으로, 석축기단(石築基壇)에 3궐(三闕)의 홍예(虹霓)를 만들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형식의 중층집으로 우진각지붕을 얹었다.


↓ 광화문

1395년(태조 4)경복궁을 창건할 때 정전(正殿)인 근정전과 편전(便殿)인 사정전·침전인 경성전(慶成殿)·

연생전(延生殿)·강녕전(康寧殿) 등을 지어 궁궐의 기본구조를 갖춘 다음, 1399년에 그 둘레에 궁성을 쌓은 뒤

 동·서·남쪽에 성문을 세우고, 동문을 건춘문(建春門), 서문을 영추문(迎秋門), 남문을 광화문이라 이름 지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당시인 1865년(고종 2)에 다시 짓게 하였다.

1927년에는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경복궁의 여러 곳이 헐리고 총독부청사가 들어서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이후 광화문은 6·25사변 때 폭격을 맞아 편전인 만춘전(萬春殿)과 함께 불타버렸다. 1968년에 석축 일부가

수리되고 문루는 철근콘크리트구조로 중건되었다가 2006년 들어, 경복궁 복원공사의 일환으로, 철거·해체되었다.

 이후 광화문 이전 공사가 개시되어 2010년 8월 완공되었다.


↓ 광화문

광화문은 석축기단의 세 곳에 홍예문(虹霓門)을 내어 3문형식을 취하였는데, 가운데 칸은 높이 17척 5촌,

너비 18척이고, 양 옆칸은 높이 16척, 너비 14척 5촌씩이다. 포작(包作)은 안 7포, 밖 5포로 출목수로는

안 3출목, 밖 2출목인 다포식을 채택하였다.

1층 기둥높이는 7척이고, 기둥 간격은 앞면은 가운데가 27척, 양옆이 25척씩이고, 옆면은 10척씩이다.

1층의 기둥 사이는 개방하였고, 2층에는 판문을 달아 열고 닫게 하였다.

내부살미는 조선 말기에 흔히 쓰던 운궁(雲宮: 살미 내부의 중첩된 부분)을 사용하였고, 내목도리(內目道里)

아래에 장화반(長花盤: 창방과 장여 사이에 길게 놓인 화반)을 놓았으며 공포 사이에는 포벽을 마련하였다.

가구수법은 아래층 대들보가 고주(高柱)에서 합보 형식을 하고 대들보와 위층 마루 사이에 공간을 두었다.

아래위층 처마는 모두 겹처마이고 지붕의 각 마루에는 취두·용두·잡상들을 배치하였다.


↓ 광화문

궁궐이라는 말이 궁과 궐의 복합어이며, ‘궐’의 형태는 높다란 석대 위에 2층 누각을 세운 것이 일반적이었음에 비추어,

조선시대 궁궐의 정문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갖추고 있다.


↓ 광화문

조선시대의 정궁(正宮)의 정문(正門)으로서 의의가 있다. 2010년 8월 완공된 광화문은 원래 위치와

모습을 되찾았으며, 최대한 원형대로 보존된 광화문은 조선 말기의 궁궐건축을 대표하는 뛰어난 건물로서

위상을 지닌다.


↓ 정부청사에도 광복70년을 축하하는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다.


↓ 광화문 광장에는 광복70년 국민화합대축제 리허설이 펼쳐지고 있다.



↓ 광화문 광장에는 태극기로 만든 나무들이 줄줄이 축하를 해주고...



↓ 세종대왕도


↓ 이순신 장군도


↓ 많은 사람들과 함께 광복70년을 축하하고 계셨다.




↓ 광장 한편에는 아직도 세월호참사를 잊지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 시위하는 가족(?) 들도  있었다.


↓ 노란리본


↓ 청계천 입구의 대형 조형물.


↓ 청계천 입구에서 시청까지의 도로에는 잠시후 펼쳐질 축제 참가자들이 준비를 하고있다.










시청앞까지 걸어서 투어를하고, 대한문 과 덕수궁을 돌아

다음 코스를 향해 발길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