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주소 때문에 집값 떨어진다"..주민들 반발
"새주소 때문에 집값 떨어진다"..주민들 반발
조선비즈 | 강도원 기자 | 입력 2011.05.03 16:41
"우리 아파트랑 옆 아파트가 이름 때문에 가격이 몇천만원씩 차이가 나는데 이름을 주소에 안 쓰게 하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아파트 이름도 주소에 좀 넣어주세요"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모습/조선일보 DB
내년 1월1일부터 전면 시행되는 '도로명 새 주소'를 두고 일부 지역 주민들이 집값이 내려간다며 반발하고 있다. 도로명 새 주소 시스템은 도로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 도로를 기준으로 건물들에 고유 번호를 부여해 보다 쉽게 목적지에 찾아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과거 일본강점기때 이뤄진 지번(地番) 주소를 획기적으로 바꾸기 위해 지난 1996년부터 행정안전부가 준비해온 역점 사업으로, 올 7월29일 새 주소가 고시되면 올해 12월31일까지 법적 주소가 모두 변경될 예정이다.
◆ 새 주소에는 아파트 이름 안 들어가
도로명 새 주소는 도로를 기준으로 건물에 고유번호를 매기기 때문에 아파트의 경우 주소에 아파트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존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서초아트자이 o 동 o 호는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58, o 동 o 호로 표기하고 주소 뒤에 (서초동, 서초아트자이)로 참고 표기를 하도록 변경된다.
일부 동에서는 '아파트 이름 = 집값'이라는 이유로 새 주소에 아파트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인근 아파트들. 이 곳은 동네를 나타내는 '반포'라는 이름과 더불어 고가 아파트로 불리는 '래미안 퍼스티지' '자이'와 같은 브랜드를 주소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는 새 주소가 적용되면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 10길 33으로, 서초구 반포동 자이는 서초구 신반포로 270으로 바뀔 예정이다. 반포 레미안 퍼스티지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사평대로라는 이름을 듣고 누가 반포동에 산다고 생각하겠느냐"며 "동네이름과 아파트 이름을 다 못 쓰게 하는 주소가 어떻게 주소 역할을 할까"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도 아파트 이름 때문에 주민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서현동·정자동 등 분당에서도 아파트 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지역 주민들은 주소에 아파트 이름을 넣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성남시 새 주소 사업팀 관계자는 "서현동 현대아파트, 정자동 파크뷰, 쉐르빌 등의 일부 주민들이 나서 집값과 직결되는 것이 이름이니 아파트 이름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주소에 아파트 이름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새 주소를 전담하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새 주소 사업이 장기 사업이다 보니 아파트 이름이 바뀌거나 사람들이 부르는 호칭이 다 달라 공법관계를 나타내는 주소에는 넣지 않았다"며 "혼란을 막기 위해 참고로 사용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아파트 이름을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일부 지역 "동네 이름이 집값의 척도" 반발
도로를 따라 주소를 정하다 보니, 기존에 사용하던 동네 이름이 달라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서울시 양천구는 같은 구 안에서도 목동과 신정동, 신월동 등 동네에 따라 집값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천구 신정동 주민들은 새 주소에서 '신월로'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양천구 신정동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신월동 사는 사람들도 달동네 느낌이 들어 동이름을 신목동, 새목동으로 바꿔달라고 하는 판인데 신정동을 신월로라고 이름을 바꾸고 온 동네에 안내 표지판을 붙이면 어떡하나"면서 "목동과 신월동은 집값 차이가 극과 극이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경우도 삼성로와 학동로로 주소가 변경된다. 이로 인해 일부 가구들은 삼성동에 살면서도 '학동'이라는 이름이 주소에 들어간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청 관계자는 "옆집은 삼성로, 우리 집은 학동로가 말이 되느냐며 삼성이라는 이름이 집값에 영향을 많이 주는데 왜 이렇게 바꾸는지 따져 묻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이 중원구 음촌로로 이름이 바뀐다"며 "주소 명칭을 이렇게 바꿔놓고 집값 내려가면 책임질거냐"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 고시 후 3년간 주소 변경 못 해
정부는 올 6월말까지 새롭게 바뀐 주소를 집집마다 방문해 고지하고 있다. 고지서에는 회신문이 있어 바뀐 주소가 맘에 들지 않을 경우 주소 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 관계 기관은 변경 요청이 들어오면 직접 조사에 나서 주소 사용자의 20% 이상이 동의할 경우 주소 변경을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7월29일까지 전국의 모든 민원을 해결할 수 없고, 7월29일 고시 이후 3년간 주소를 변경할 수 없어 향후 반발이 예상된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한 주민은 "신청해서 다 바꿔줄 것 같으면 왜 새 주소를 도입하느냐"며 "모든 지역에서 이렇게 주소 변경을 해주다 보면 결국에는 사업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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